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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부마항쟁 공수부대 불법 투입 지시내렸다.

비트윈더라인 BetweenTheLines 2018.02.18 13:23



박정희 부마항쟁 공수부대 불법 투입 지시내렸다.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

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를 마련해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부산 마산의

앞글자를 따서 부마항쟁이라고 불리우는데...

1979년 10월초순부터 부산일대에서 시민들

이 항거에 나선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산

에서 유신독체체제에 항거하여 이 항쟁이 일

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부마항쟁은 박정희의 경제무능때문

에 일어난 항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당시 박정희 정권때, 우리나라는 외환보유고

가 바닥이 났다. 따라서 당시 물가가 하늘 높

은줄 모르고 치솟았고, 실업률이 매우 높아

졌다. 재정적자는 날이 갈수록 커졌고, 시민

들 삶은 파탄에 이르렀다. 




물론 글로벌 변수가 있긴 있었다. 바로 제2차

석유파동이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의 피해가 매우 컸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중화학공업육성이나 

사회 인프라확충을 위해서 무리하게 재정

지출을 확대했다. 


따라서 국가의 곳간이 비게 된 것이다. 그리

고 과도하게 미국에 의존하는 경제시스템

이었다. 때문에 미국이 돈을 회수하자 우리

나라 경제는 붕괴되었다. 금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고, 배추한포기에 당시 4000

원을 했다고 한다. 부도율이 치솟기 시작했

다. 중화학 기업들이 모여 있던 경남의 경제

가 파산직전이었다. 특히 부산은 당시 경제

의 중심지였는데, 부산 기업들의 부도율이

제일 높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부산지역에서의 민심은 분노했

고, 박정희의 유신독제와 맞물려 민심이 

폭발하게 된 것이다. 부마민주항쟁은 이로

인해서 폭발했고, 이는 김재규의 총탄이 발사

되던 26일까지 이어져 결국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촉발시킨 사건이 되었다. 


당시 박정희는 하명사항을 통해서 공수부대

를 항쟁 진압에 투입했다고 한다. 마산지역

에서 난동 군중 타격시에 초기 제압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대학교의 휴교를 지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지시에 따라 부산 계엄사령

부에 소속된 제1공수특전여단 제2대대 소속

병력이 마산으로 출동했고, 시위 진압에 가담

했다고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경제도 파탄냈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정희

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이제 그에 대한 결론이 남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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